가야 와인

시그니처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 와인을 이야기할 때 “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두 가지 와인은 이탈리아 피에몬테에 위치한 랑게 지역의 자랑이며, 네비올로 포도로 탄생한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바롤로 보이즈(Barolo Boys)를 통해 묘사된 이러한 혁명은 과감한 모더니스트와 강경한 전통주의자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혼란 상태인 지역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줄거리에 따르면, 모더니스트는 시장에 출시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려 과도하게 탄닌이 함유된 와인을 제조하는 것에 대하여 전통주의자들을 비난했고, 전통주의자들은 숙성되거나 진화할 수 없는 와인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가져온 배럴을 사용하는 배신 행위를 한다고 모더니스트를 맹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공격적인 당파적 다툼이 언제나 거의 그렇듯이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로젠(Illhaeusern)에 위치한 마크 헤벌린의 부엌 벽장에 있는 나무 플래카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5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오베르주 드 릴). 여기에는 폴 보퀴즈의 명언이 적혀 있습니다. “클래식 또는 모던함: 좋은 요리란 퀄리티 있는 요리를 말한다.” 전통이나 모던함이라는 타이틀에 상관없이, 결국 결정적인 가치는 바로 퀄리티입니다. 이 지역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논쟁에서 온전히 벗어난 폴 보퀴즈의 인용구가 바로 뛰어난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 와인에 대한 가야 가문의 모토입니다. 이들은 오직 뛰어난 와인만을 위한 장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파와 전통파라는 서로 반대되는 그룹에서 오늘날의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 와인을 어떤 식으로 제조하고 싶어하는지와 상관없이, 지난 50년간 발생한 중대한 변화를 부인할 수 없으며 이러한 변화를 통해 세계 최고의 절정에 달하는 와인을 생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역사의 한 단면은 변화가 얼마나 기본적인지 보여줍니다. 포도 재배와 포도주 양조학에 관한 이탈리아 최초의 저널을 설립한 오타비오 오타비(Ottavio Ottavi)를 통해 이와 관련된 과거를 살짝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작성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고급 와인은 아주 조금만 만들고, 그보다 못한 와인을 더 만들고, 식초는 정말 많이 만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떤 와인은 교황의 미각을 당기지만, 다른 와인은 간신히 피망 요리에나 어울릴 정도입니다.” 과거에 대한 우울한 평가의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와인 수출 무역의 부재로 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Blancpain art de vivre _ San Lorenzo
Blancpain Art de vivre - Gaja con cavallo

수십 년간 영국, 이후로는 미국 등 외국 시장과 활발하게 거래했던 프랑스와는 달리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랑게 지역에서는 이러한 거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196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와인은 이 지역의 부수적인 특산물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완벽한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 빈야드를 보면, 포도나무들 사이에 다른 농작물을 재배했다는 것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포도보다 밀이 더욱 많이 수확되었습니다.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빈야드 소유주들은 종종 주요 수입원으로 동물과 과일, 헤이즐넛(랑게 지역 특산물)에 의지했습니다. 와인의 경우, 열성적인 외국 시장이 부족하여 대부분은 지역 내에서 소비되었고 이에 따라 낮은 가격으로만 팔렸습니다.

이같이 좋지 못한 상황은 현재 가야 가문의 원로인 안젤로 가야(Angelo Gaja)가 1961년 알바 소재의 포도 재배 및 포도주 양조학 학위를 취득했을 당시 가야 가문에게 닥쳤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안젤로의 아버지인 지오반니는 바르바레스코에서 가족 와인 비즈니스를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지오반니는 지역 내 대부분의 와인보다 월등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지오반니는 기하학자(측량사)라는 직업으로 주요 수입원을 얻었기 때문에, 빈야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다른 사람들이 타협하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오반니는 와인이 자신의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벌크 와인으로 판매하여 손실을 감당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랑게의 다른 많은 와인 제조사들에는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대안이었습니다. 품질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그는 바르바레스코가 일반적으로 리터당 300-600리라에 팔렸던 1950년대, 1,200리라라는 놀라운 가격을 받았습니다.

지역 내 말고는 시장이 없기 때문에 와인 가격이 침체되었고, 많은 와인 제조사들이 절망하여 소중한 양조장 내의 구획을 판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지오바니는 바르바레스코를 인수하며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1967년에는 소리 산 로렌조(Sorì San Lorenzo), 1970년에는 소리 틸딘(Sorì Tildin), 1978년에는 코스타 루씨(Costa Russi)를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날 존경받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조장을 구매할 당시 이 구획들은 세계적인 포도주 전문가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안젤로는 나중에 소리 산 로렌조로 이름 붙인 이 구획을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는가에 대하여 불평하는” 소유주와 “겨우 먹고 살 만큼 벌기 위해 애써야 하는 소작인”과 함께 “폐허” 속에 있는 상태라고 묘사합니다.

당시의 이 빈야드에는 현재 알려진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빈야드 이름을 붙이는 것에 관해서는 프랑스와 의견이 달랐습니다. 복잡하게 묘사를 더하지 않고 단순한 호칭으로 와인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관행입니다. 따라서 샹베르땡 끌로 드 베즈 또는 샤샤뉴 몽라쉐 레 루쇼뜨는 호칭 이외에 아무런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 용어로는 이것을 “크뤼(crus)”라고 하며, 수 세기 동안 각 크뤼의 정확한 경계와 이름 사용 권한이 확립되었으며 이제는 엄격하게 통제됩니다. 끌로 드 부조의 그랜드 크뤼 내 특정 하위 구획을 지정하기 위해 “뮈지니”가 추가된 버나드 그로스의 끌로 드 부조 “뮈지니”, 또는 프리미어 크뤼 레 말콘소츠 내 특정한 작은 지역을 의미하는 에티엔 드 몬틸레의 보스네 로마니 레 말콘소츠 “크리스티안”와 같이 빈야드 지정에 추가 이름을 추가되는 드문 예외도 일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으로 크뤼의 이름을 짓는 관행에서 벗어난, 매우 특이한 예외입니다.

안젤로가 1970년 그의 아버지로부터 통제권을 받았을 때, 그는 이 세 개의 하위 구획이 특별한 떼루아라는 것을 인지하였고, 지오반니의 인수의 지혜를 바탕으로 발전시켜나갔습니다. 토양의 특별함, 경사면의 위치, 태양에 대한 노출과 타나로 강의 영향력 덕에 여러 빈야드에서 와인을 혼합하는 일반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각각 별도로 포도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떼루아를 알리기 위해 포도주에 독특한 이름을 부여하고 이들을 구별했습니다. 두 곳은 바르바레스코 마을 인근으로, 현재 세컨다인 빈야드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현재는 소리 산 로렌조로 알려진 세컨다인 하위 구획은 알바 성당의 수호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소리”는 지역 방언으로, 남쪽을 향해 있는 산비탈이라는 뜻), 다른 세컨다인 하위 구획인 소리 틸딘은 그의 할머니인 클로틸드 레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인수한 세 번째 구획인 코스타 루씨는 롱깔리에떼 빈야드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전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Blancpain art de vivre Barbaresco veduta aerea
Blancpain art de vivre Gaja wine

이 세 개의 하위 구획에서 별도로 포도주를 양조하고 보틀링 작업을 함으로써 포도주들은 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하게 되었습니다. 코스타 루씨는 세 가지 중 가장 부드럽고 어린 포도일 때 맛이 가장 좋습니다. 소리 틸딘은 탄닌이 강하고 일반적으로 산도가 높습니다. 소리 산 로렌조는 세 가지 와인 중에서 가장 파워풀하고 밀도감 있는 스파이시 와인으로, 그만큼 오랜 숙성이 필요합니다. 안젤로가 이러한 방식으로 라벨링을 시작했을 때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의 관습은 지역 이름만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DOCG 바르바레스코와 DOCG 바롤로라는 이름으로 와인이 판매되었습니다. DOCG 바르바레스코 내에 위치한 세컨다인과 롱깔리에떼와 같은 빈야드는 아직 알려지기도 전이었습니다. 세컨다인 또는 롱깔리에떼와 같은 특정 빈야드 지역의 지도 제작과 정의는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알바 랑게 및 로에로 지역 보호 컨소시움(Consorzio di Tutela Barolo Barbaresco Alba Langhe e Roero)의 20년 프로젝트로 진행되어 비교적 최근에야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세 곳의 빈야드에 관한 안젤로의 결정은 매우 과감했으며 진보적이었습니다. 여러 빈야드의 포도 품종을 혼합하여 포도주을 만드는 것이 관행이었던 당시 그는 각 빈야드 지역의 단일 품종으로 포도주를 양조하고 보틀링 작업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특정 빈야드 지정 없이 바르바레스코가 판매되던 상황에서 그는 하위 구획까지 지정하며 관리해 관습을 벗어났습니다.

특정 하위 구획에 따른 명명은 일반적인 프랑스 관행과는 달랐지만, 안젤로는 학교 졸업 후, 그리고 그의 아버지로부터 빈야드를 인수하기 전 프랑스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가야 와인의 품질을 와인 분야에서 최고의 등급으로 높이는 것이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전 세계의 성공적인 와인 제조자와 마찬가지로 품질을 추구하는 그의 노력은 단 하나의 요소가 아닌 다양한 면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의 수많은 혁신은 빈야드의 수확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이루어졌습니다. 제대로만 실행한다면, 수확량 제한은 과실의 농도를 높여주므로 와인의 품질이 개선됨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위한 그의 방식 중 하나는 포도나무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는 방식). 또 다른 방법으로 열의 방향을 바꿔 횡단하기보다는 비탈을 따라 나무를 심었습니다. 싹을 줄이는 공격적인 가지치기는 그의 세 번째 기법이었으며, 당시 랑게 지역에서 비난을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재배자들이 20개 이상을 남기는 것과는 달리, 그는 포도나무의 가지를 잘라내어 나무당 12개의 싹만을 남겼습니다(이후에는 8개로 줄였습니다). 1에이커당 하나의 싹만을 남겨 수확량을 1,600송이로 줄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안젤로는 많은 싹을 잘라내어 수확량을 크게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험담하였고, 사실상 그의 회사가 실패하여 작업자들에게 임금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확량을 훨씬 더 줄인 안젤로는 포도가 완전히 성숙되기 전에 송이를 잘라내어 남아있는 열매가 익어가는 데 모든 영양분이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그린 하비스트(green harvesting)” 방식을 시작했습니다.

Blancpain art de vivre - Gaja wine

나아가 품질 개선을 위한 다른 방식들도 이어서 도입하였습니다. 최근 가야는 포도나무 잎 캐노피의 높이를 낮추어 따뜻해진 온도에 대응하도록 했습니다. 줄어든 잎으로 포도나무는 천천히 성장하여 높은 온도에서 생성되는 당분 소모를 줄입니다. 과도한 당분은 알코올이 지나쳐 균형이 맞지 않는 와인으로 이어집니다. 꿀벌조차도 철저한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농약 없이 벌레를 퇴치하고 꿀벌 효모를 이용하고자 꿀벌 군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당시 커다란 와인 숙성 배럴(보통 2,000리터이며, 때로는 최대 15,000리터)을 사용하여 수십 년 동안 재사용하고 긴 코르크를 사용하던 현지의 방식과는 달리, 온도 조절 포도주 양조, 225리터 사이즈(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일반 사이즈)의 새로운 것과 1년 된 프랑스 오크 배럴을 함께 사용한 짧은 침용 시간 등의 추가적인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안젤로의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아버지 지오반니의 위대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을 고집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굳은 신념을 돌이켜 볼 때, 옛 속담인 “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치지 마라”라는 말은 분명히 여기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모든 변화가 가족 내에서 애정 어린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가 바르바레스코의 가족 소유 빈야드 중 하나를 네비올로(모든 DOCG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는 100% 네비올로 품종입니다)에서 까베르네로 바꿨을 때, 네비올로와는 다른 이름인 것은 물론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이중으로 논란이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 지오반니는 이를 마시기를 거부하며 해당 구획에 “다르마기(Darmagi)”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르마기(Darmagi)”는 “유감이다(what a pity)”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적과 전통적이라는 대립 논쟁에서 사람들은 가야의 방식을 어떻게 분류했을까요? 사실 둘 다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와인 제작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와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에게 현대주의자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보는 것처럼, 이러한 변화는 단지 랑게 지역에서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없다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다르마기 까베르네 빈야드 또는 다른 곳에 가이아 & 레이(그의 딸인 가이아와 할머니 클로틸드 레이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보틀링을 위해 샤도네이를 재배하기로 한, 당시 논란이었던 결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강경파들은 바르바레스코의 포도는 전부 네비올로여야만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물론 네비올로는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에서 잘 자라지만, 특히 더 먼 과거에 다른 와인 제조사들이 많은 품종을 생산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품종을 재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프랑스 오크를 사용한 것으로 현대주의자라는 라벨을 정당화할 수 없을뿐더러, 몇몇 와인 제조사가 다른 이들과 의견을 달리하며 자신을 모더니스트라고 밝혔을 때 그들 중 일부는 프랑스 오크 배럴 자체를 그 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론은 바로 와인은 종종 오크 향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가야에서 프랑스산 오크는 와인 제조에서 사용되는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는 일반적으로 프랑스 오크 배럴에서 1년 동안 숙성되고, 다시 커다란 배럴에서 1년 동안 숙성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융통성 없는 규칙이 아닙니다. 작물의 특성에 따라 기간의 조정되며, 특정한 경우에 프랑스 오크는 전혀 사용되지 않습니다. 빈티지 와인의 경우, 발효 후 와인을 테이스팅하지만, 그 결정은 작은 프랑스 배럴에서 숙성되는 시간은 물론 새로운 배럴 사용, 1년 된 배럴 사용 비율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날 가야 가문은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에 250에이커 규모의 빈야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바르바레스코에 속한 세 개의 주요 하위 구획과 함께 가야는 바롤로에서도 스페르스와 콘테이사라는 이름으로 이와 비슷한 싱글 빈야드 보틀링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가야는 여러 빈야드 품종으로 구성된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 와인도 선보입니다. 예를 들어, DOCG 바르바레스코는 바르바레스코와 인근 트레이소 마을 주변의 14개의 다양한 빈야드의 혼합 품종으로 구성된 제품입니다. 혼합 품종 보틀링 제품이지만, 포도는 별도로 수확하고 양조하며 숙성한 후 보틀링 시점에 블렌딩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가야는 최종 블렌딩에 들어가는 각 빈야드 품종의 상대적 비율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랑게 지역의 성공으로 가야는 몬탈치노의 와인, 피에베 산타 레스티 투타와 카’ 마르칸다로 투스카니 지방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Blancpain art de vivre Gaja Wine
Blancpain Gaja wine

안젤로 가야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사업에 대한 책임을 그의 세 자녀인 가이아, 로사나, 지오반니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들에게는 구체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조직도가 없다고 자랑합니다. 그 대신, 안젤로의 아내인 루시아를 포함한 모든 가족 구성원이 언제든지 와인 제조에 관한 결정, 테이스팅, 방문객 환영, 이탈리아와 해외에서 고객을 돌보는 일 등 가야 가문의 사업에 필요한 활동에 참여합니다. 가족의 이름이 적힌 와인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가족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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